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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5시부터 7시까지의 당신

지인들과 신년 모임을 하던 자리에서 길흉화복을 점쳐준다는 앱을 열고 올해의 운세를 보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시기엔 불안도를 자극하거나 정신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차단하는 편인데 그날은 왠지 내키지 않았는데도 토정비결 앱을 연 후배한테 내 생년월일시를 불러주고 말았다. 2024년의 내 운세엔 안 좋은 말들이 고루 적혀 있었다. 질병과 구설수, 가까운 사람과의 반목과 손절 등등.   부정적인 말들을 막상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재미로 생각하라거나 조심하며 지내면 된다는 말이 그다지 와 닿지 않게 된다. 여기서 어떻게 더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 때가 많고 일상과 일생을 흔드는 일들은 인과(因果)로 반듯하게 설명될 수 없는 채로 찾아올 때가 대부분이므로.   내게 수신된 말의 영향권에서 홀연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 달이든 한 해든 그 말이 걸어놓은 시간을 그저 고스란히 통과하는 수밖에는 없다. 아무런 불운 없이 그 기간이 무사히 지나갈 가능성과 내 취약한 장기의 세포 변화로 인해, 사회적 자아의 타격으로 인해, 잃어버린 사람으로 인해 인생이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모두 안은 채.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40대 중반의 연극과 교수인 주희가 의사한테 조직 검사를 권유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주희의 유방 초음파 결과를 보면서 의사는 이런 경우 열명 중 한 명 꼴은 암이라고 말한다. 아홉명은 암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말한다. 그때부터 주희는 절망할 수만도 없고 낙관할 수만도 없는 어떤 시간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는 병원에서 나와 연구실로 돌아간 주희의 5시부터 7시까지를, 삶으로도 죽음으로도 가능성이 열리게 된 주희의 두 시간을 다룬다.   주희는 그 두 시간 동안 연구실로 찾아온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복도에서 만난 동료 교수의 푸념을 한참 동안 듣기도 한다. 딸아이를 봐주고 있는 친정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암의 가족력을 묻기도 하고 성적 이의제기를 하러 온 학생을 설득하며 다음에 보면 인사하자고도 말한다. 7시가 다 되어갈 무렵엔 건물 복도를 헤매다 길을 물어온 배달 라이더를 만난다.   자판기와 구름다리를 어떻게 지나 찾아가야 하는지 라이더에게 길을 말해주는 주희와 주희의 설명대로 자판기를 지나 뛰며 길을 찾는 라이더의 모습은 이 두 시간 동안의 만남 중 가장 잔상이 오래 남는 만남이다. 라이더가 숨을 몰아쉬며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문을 연 스튜디오는 그리 오래지 않을 미래의 어느 장소로 연결이 되고, 그곳엔 이전의 어느 날 특정 시간대에 주희가 만났던 이들이 모두 모여 있다. 그 장면에 이르러서야 영화는 5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이 주희가 겪어낸 시간일 뿐만 아니라 주희를 만난 이들이 주희를 기억하는 시간일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어떤 시간이 기억하는 사람의 시간이 될 때 무엇이 동반되는 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마지막 인사인 줄도 모른 채로 무심한 인사를 건넸던 그때로, 했어야 좋았지만 하지 못한 말들 사이로, 다시 나눌 길이 없는 차 한 잔의 시간 속으로, 누군가는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당신이 그 선택을 하기 전으로, 누군가 개입할 수도 있었을 상황 속으로, 내가 그 말을 뱉기 전으로, 너를 잃기 전으로, 이제 그만 기다리겠다는 말을 듣기 전으로, 그 전으로, 다시 그 전으로, 계속 되돌아가고, 반복해 겪고,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상대와의 시간을 재구성하고 기억의 틀을 만든다. 우리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만났던 사람이 되기도 한다.   자신한테 가장 중요한 건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제자를 주희는 다만 안아주는 사람이다. 가장 어둡고 힘들 때 자신이 가장 잘 보인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 사람이고 사실은 너무 무섭다면서 엄마한테 안겨 울고 싶은 사람이다. 제자가 들고 온 쿠키를 너무도 맛있게 먹는 사람이고 배달 라이더가 길을 잘 찾을지 걱정하며 오래도록 복도 끝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게 남은 주희의 모습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과 얘기하며 눈을 맞추고 있을 때의 주희가 아니다. 잠깐씩 혼자 남았을 때, 상대와 시선이 비끼던 찰나의 순간에 김주령 배우의 얼굴에 드러나던 주희의 짙은 피로감이다. 사십 몇 해를 묵어야만 가능한 농도의 피로감. 젊지도 않지만 늙지도 않은 자이기에 더 피해갈 수 없는 피로감. 애증과 연민과 우정과 체념의 시간을 끌어안은 채로도 사랑의 순간을 기억하는 자의 피로감. 나는 어쩐지 그런 지친 눈빛을 한 자의 얼굴을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최은미 / 소설가마음 읽기 길흉화복 영향권 특정 시간대 배달 라이더 자판기와 구름다리

2024-02-19

[푸드라이터] 아침약? 저녁약?

어떤 약은 저녁에 먹어야 더 효과 있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 때 복용하는 스타틴이 대표적이다. 인체는 밤에 자는 동안에 콜레스테롤을 더 많이 만든다.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보다 오후 8시부터 자정에 네 배 더 빠르게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합성한다. 스타틴을 저녁 잠들기 전에 복용하는 게 더 효과적인 이유다. 스타틴 중에서도 체내 머무는 시간이 긴 약물(로수바스타틴·아토르바스타틴)은 아침에 복용해도 별문제가 없긴 하다. 하지만 몸에 짧게 머무는 심바스타틴 같은 약은 반드시 저녁에 먹어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시간에 따라 이렇게 약효가 달라지는 것은 일주기 리듬 때문이다. 일주기 리듬이란 약 24시간을 주기로 사람의 정신이나 행동, 생리현상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쉬운 예로 누구나 시계가 없어도 생체시계에 따라 낮에는 깨어 있고 밤에는 잔다. 시간에 따라 호르몬 분비나 면역반응도 달라진다.   실제로 면역계 활동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감기나 알레르기 증상이 밤에 더 심해지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염증을 억제하는 코티솔 호르몬 수치는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동안이 가장 높다가 점점 낮아져서 한밤중에 최저치가 된다. 사람에 따라 항히스타민제를 저녁 자기 전이나 이른 아침에 복용하면 더 효과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도 일주기 리듬과 관련된다. 하지만 아직 특정 시간대에 복용하는 게 낫다고 알려진 약이 그리 많지는 않다.   모든 약이 복용 시간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일부 과학자는 특정 혈압약이 저녁 자기 전에 복용하면 효과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연구 결과에 따라 자신의 약 복용 시간을 바꾸기엔 이르다. 지난 10월 학술지 랜싯에 발표된 대규모 연구 결과 혈압약을 아침에 먹든 저녁에 먹든 효과가 비슷했다.   게다가 생체시계에 따라 약효나 부작용이 다른 경우에도 성별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대장암을 치료하기 위해 특정 항암제를 투여할 때 남성은 오전 9시가 가장 독성이 적게 나타나지만 여성에게는 그 시간대가 가장 독성이 강할 수 있다. 사람마다 생활습관, 기상 시간이 다르니 일주기 리듬의 영향을 받는 약이라도 투여 시간을 개인별로 조정해야 한다. 아직 생체시계와 약 복용 시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다.   1970년대 일주기 리듬이 뇌의 시상하부에서 조절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0년대에 와서는 생체시계가 인체 세포에도 내장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시간에 맞물려 유전자 발현이 조절된다는 이야기다. 언제 복용하느냐가 약효를 높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도 시간이 지나면 더 분명해질 것이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아침약 저녁약 아침약 저녁약 복용 시간대 특정 시간대

20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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